서울공예박물관, 근대 나전칠공예 선구자의 희귀작품 기증받아

최선경 기자 / 기사승인 : 2024-03-13 12: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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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조선미술전람회 수상작…현전하는 전성규의 작품 중 가장 규모가 큰 작품
▲ 전성규, , 1937년 조선미술전람회 출품(정은덕 기증)

[뉴스스텝] 서울공예박물관은 근대 시기 천재적인 공예가이자 나전 칠공예의 혁신을 주도한 수곡(水谷) 전성규(全成圭, 1880년 전후~1940년)의 대표작'나전칠 산수문 탁자'를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수곡 전성규는 쇠퇴해가던 조선의 나전 칠공예의 전통을 잇고, 이를 근대적으로 발전시킨 장인이자 교육자·계몽운동가이다. 특히 1925년, 제자 김봉룡과 함께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만국 장식미술 및 공업박람회'에 유일한 조선인으로 작품을 출품하여 은상과 동상을 수상하며, 식민지 치하에서도 우리 나전칠기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리는 역사적인 성과를 이뤄내었다.

특히 나전 칠공예 작업 과정에서 공업용 실톱을 처음으로 도입하여 여러 장의 나전을 정교하게 오릴 수 있는 ‘주름질 기법’을 사용, 나전칠기 대량생산의 길을 열며 우리 나전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번에 서울공예박물관이 기증받은'나전칠 산수문 탁자'는 전성규가 1937년 제16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입선한 작품으로, 현전하는 전성규의 약 10여점 작품 가운데 제작연대가 정확하고 가장 규모가 큰 작품이다. 국내에 전성규의 작품이 매우 희귀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이번 기증은 근대공예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학술자료가 되고, 또한 시민들이 한국 근대 나전의 전통과 위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탁자의 상판에는 전성규 특유의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유려한 곡선으로 표현된 산수무늬가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전성규는 1923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수묵화로 입선할 정도로 빼어난 그림 실력을 지니기도 했는데, 이 탁자 위에 그의 그림 솜씨가 여실히 드러나 있다.

‘남종화 풍’의 영향을 받은 상판 그림을 살펴보면, 깊은 산속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고즈넉한 사찰이 자리 잡았고, 골짜기 사이로 흐르는 강 위로는 백조 세 마리가 날고 있다. 뒤편으로는 웅장한 산세가 원근감 있게 묘사되어 있으며 좌측 상단에는 화면과 어울리는 한시가 적혀져 있다.

萬疊芙蓉一凡愚일만 첩첩 부용 속의 한 사찰渡橋穿樹下姜南다리건너 나무지나 강남을 내려가네邊坐極浦斜陽裏석양지는 먼 포구가에 앉으니白鳥分明見兩三두세마리의 백조가 또렷히 보이네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이러한 산수 도안은 이전 시대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으로, 김봉룡, 송주안, 심부길 등 전성규 제자들의 초기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이 작품에는 특이하게 나전으로 ‘수곡 전성규(水谷 全成圭)’ 라는 작가의 호와 이름, 그리고 수결(오늘날 서명 혹은 사인) 이 표시되어 있다. 작품에 작가의 이름과 수결을 넣는 것 또한 근대 나전칠공예에서는 처음 보이는 사례로서 주목할 만하다.

이 작품을 기증한 정은덕(1947-) 여사는 일제강점기 부산과 목포를 무대로 활동한 실업가이자 사회사업가 김명오(金明五)의 외손녀로, 이 작품은 그의 외조부 김명오가 자택 사랑방에서 오랜 기간 사용하던 작품이다.

이 작품을 처음으로 구입한 김명오는 부산 동래 출신으로 조선인 최초로 고무신 공장을 설립한 사업가다. 근대 고무공업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사회사업가로도 공익방면에 많은 기부를 하여 지역민들로부터 두터운 신망과 찬사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번 작품의 기증자인 손녀 정은덕 씨는 “이번에 기증하는 탁자는 할아버지 댁에 있던 산수문 탁자 2개 중 하나로, 어린시절 두 탁자를 뛰어다니며 놀았던 기억이 생생하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한 평생 기부의 삶을 사신 외조부의 뜻을 이어 공예사적으로 의미가 큰 그분의 애장품을 박물관에 기증해 많은 시민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나에게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며 기증의 변을 밝혔다.

한편, 이 작품은 작년 서울공예박물관에서 개최한 기획전시 《나전장의 도안실-그림으로 보는 나전》에서 처음으로 발굴되어 선보인 바 있다. 일반 관람객들은 물론 근대공예 연구자, 나전칠공예 장인과 작가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모았다.

서울공예박물관은 '나전칠 산수문 탁자'의 역사적·미학적 가치가 매우 뛰어나다고 판단, 전성규의 수제자인 김봉룡의 맏아들 김옥환씨가 작년(2023년) 박물관에 기증한 전성규의 도안 20여 점과 함께 향후 국가등록문화재로 일괄 등록 신청할 방침이다.

서울공예박물관 김수정 관장은 “100여 년 가까이 잘 간직해온 귀한 작품을 서울시에 기증해주신 정은덕 님의 큰 뜻에 감사드린다” 며 “서울공예박물관은 앞으로도 전성규를 비롯한 근대 나전칠공예 장인과 작가들의 작품과 도안들을 지속적으로 발굴,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우리나라 전통공예를 대표하는 나전칠공예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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